"흙에서 놀고 있지요... 농사가 일이자 놀이가 됐습니다"
2023.05.27
강원도 홍천군 서석면에 위치한 삼생마을은 자연 그대로의 울창한 숲이 있는 산촌마을이지만 온화한 남풍이 불어와 농사짓기 적당한 곳이다. 강태정 씨(35)는 농사 경험도 없고, 연고도 없이 이 마을로 무작정 귀농해 농사를 시작했다.강태정 씨의 전직은 방송 작가. 외주 제작사에서 TV프로그램 기획, 구성, 대본을 쓰는 일을 했다. 방송사 작가는 아니었지만 제법 잘나가는 방송 작가였던 그는 하던 일을 그만두고 농부가 된지 벌써 4년째다. 강 씨는 지금 유기농법으로 소량 다품목 채소를 키우고 있다. 그를 만나기 위해 방문한 9월초 밭에는 수확이 한창인 호박들이 주렁주렁 가득했다.강 씨가 농부가 되려고 결심 한 것은 2017 년 가을, 서른에 이르렀던 무렵이었다. 당시 그가 작업하던 프로그램은 늘 7-8개 정도였다. 방송가에서는 이름도 알려질만큼 방송작가로서 유능했다. 그렇게 승승장구하던 강 씨는 왜 작가를 그만뒀을까. 그리고 왜 귀농했을까. 계속 의문이 솟구쳤다."당시 작업하던 프로그램이 7~8개 정도됐습니다. 작업량도 많았기에 취재를 위해 전국을 돌아다녀야 했지요. 처음에는 취재를 위해 농부들을 만나고 농가를 방문하고 농사 현장을 확인하면서 그들의 삶이 머릿속에만 들어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곳에 머물고 싶고 가슴이 두근두근 뛰더라고요. 방송작가로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었지만 그런 설레임은 처음이었습니다." 그렇게 마음이 움직이는대로, 가슴이 시키는대로 따르기 위해 당장 회사에 사표를 내고 지금의 삼생마을에 이주했다.무작정 귀농했지만 농업 지식은 없었습니다. 먼저 기술을 배우려고 생각했지만, 어디서 어떤 교육을 받아야 할지 조차 몰랐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무모한 결정이었지요."(웃음)농사의 매력에 푹 빠졌던 강태정 씨는 인터넷에서 닥치는대로 귀농귀촌 교육 프로그램을 찾았고, 체험 프로그램을 실시하는 농가를 모두 조사했다. 마감에 쫓기는 생활을 했던만큼의 행동은 빨랐다. 첫 목적지는 강원도 인재 황태덕장이었다. 귀농했던 시기가 가을이었던 만큼 겨울이 빨리오는 강원도 특성상 그가 덕장 체험을 위해 도착하자마자 엄청난 양의 눈이 내렸다."다리가 푹푹 빠지는 눈 더미 속에서 어떻게 작업할까 싶었는데, 덕장분들 모두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하시더군요. 깜짝놀랐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황태는 찬 바람과 눈을 맞으며 녹고 얼면서 맛이 더해지기 때문에 빠르게 작업해야 하더라고요." 황태 덕장에서 경험한 그는 강원도 농업기술원에서 2주간 귀농귀촌 교육을 받았다. 공부하면 할수록 농사가 기존에 생각하던 전원생활과는 차이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서는 후회보다는 도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올라왔다."덕장에서 체험해보고 공부하면서 농사가 쉬운일이 아님을 감지했습니다. 하지만 어렵다는 생각이 들면 들수록 해보자는 결의가 생기더군요. 지금 생각해보면 농업과 인연이 닿으려는 것 아니었나 싶습니다."이후 강 씨는 토마토, 오이 채소와 쌀을 재배하고있는 농업법인 하다농장에 들어갔다. 이곳에서 본격적으로 농사일을 배운 그는 농장 생활 1년 반에서 100㎏이었던 몸무게가 80㎏까지 줄었다."몸을 써서 일한적이 거의 없었는데, 농장에서 일하면서 오로지 육체에 의지해 일을했지요. 몸무게가 100kg 나갔을때는 여기저기 질환이 많았습니다. 도시에서는 운동하는 것도 쉽지 않고, 술자리며 식사자리가 많아서 체중을 줄이는 것이 쉽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농장에서 일하면서 매일 몇 kg씩 빠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침 5시 이전에 일어나 6 시부터 밭에서 퇴약볕 아래서 일하다 보면 땀 투성이가 됩니다. 며 매일 일하다 보니 식사량을 줄이지 않아도 저절로 살이 빠지더군요. 방송 작가때 처럼 야근하지도 않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다 보니 저절로 슬림해지더라고요. 현재도 체중을 유지하고 있습니다."이뿐이랴. 강 씨는 농장에서 농업기술도 배울 수 있었다. 농업의 지식이 백지 상태였기 때문에 마치 스폰지가 물을 흡수 하듯 배워나갔다. 또 직접 키워 수확 한 것을 소비자들이 사줄때 지금까지 맛본 적이 없는 기쁨을 알게됐다고.또 지역에서는 이웃 주민들과의 관계가 중요했다. 지역에서는 관계속에서 정보를 주고 받는 등 네트워크를 이어간다."저는 지역의 청년농부 모임에 가입했습니다. 완전 백지 상태에서 출발한 농업이었지만 이제는 유기농 채소재배 기술뿐만 아니라 농부 친구들도 생겼습니다."현재 강태정 씨는 1600평 부지에서 채소 하우스 3동에서 유기농법으로 채소류를 재배하고 있다. 봄에는 양상추, 상추, 무, 여름에는 토마토, 호박, 가을에는 녹두, 당근, 시금치, 겨울에는 당근, 시금치를 키운다. 규모가 작은만큼 소량 다품목 재배가 적합했다."처음으로 모종이식부터 수확까지 스스로 재배한 야채를 판매하면서 그 뿌듯함을 형용할 수 없을만큼 기뻤습니다. 판로는 하다농장의 중개로 출하 시설도 확보 할 수 있었습니다."귀농 후 가장 큰 위기는 지난해 강이 범람했을때였다. 물에 잠겨 농작물이 모두 잠긴 하우스도 있었다."아찔했지요. 그래도 저희는 피해가 많지 않아서 간신히 위기를 넘겼습니다. 몇 년 안되 사이 여러가지 일들을 겪으며 이제는 흙에서 놀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농사를 짓습니다.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하잖아요. 저는 농사가 일이자 놀이가 됐습니다."